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연극 '갈매기'를 보고 왔다.
이순재 선생이 연출을 맡아 유명한 모양이다. 아마 선생의 연세가 90 가까이 되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연출도 하고 배우로도 출연하시다니 놀라운 일이다. 혹시 워커홀릭?
내가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았냐면 그건 아니다. 연극은커녕 그 흔한 드라마나 영화도 자주 안 본다. 문학적 이해가 부족하던가 아니면 감성이 남들만 못한 것이리라. '갈매기'에 출연하는 배우 한 명이 막역한 사이인데 얼마 전 동창회에서 한 번 보러 오라고 하는데 차마 멀어서 못 가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의리가 있지.
공연장소는 유니버설 아트센터라고 하는데 어린이대공원 아차산역이라고 한다. 아트센터는 선화 예술 학원(학교법인인 듯.. 초중고가 모두 모여 있는 듯했다.)과 함께 있으며 리틀앤젤스도 이곳에 있나 보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평생 갈 일 없는 곳이긴 하다. 다행히도 같이 가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 자가용으로 가기로 하니 개꿀. 19시 30분 공연시작이고 넉넉하게 16시 30분에 출발했지만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가는 길은 몹시 막혔다. 레이싱을 방불케 하는 친구의 과격(?)한 운전으로 주변 차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도착했기에 저녁은 먹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아차산역이 있어서인지 근처에 식당들은 많았고 지도로 미리 봐둔 부대찌개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맛은 제법 괜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있는데 '갈매기'는 먹을게 풍성했다. 태어나 관람한 연극을 모두 합쳐야 열 손가락에 못 미치지만 이번 연극의 출연진은 그동안 본 작품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 같았다. 이순재 선생대신 주호성 선생이 출연했지만 이 분도 워낙 유명한 분이라 기대만빵. 공연장도 마치 중세 유럽풍의 분위기가 나서 인상 깊었다. 왜 그러지 않나. 오페라 공연이 무대에 펼쳐지고 이층 발코니 같은 관람석에서 귀부인이 손잡이 달린 안경을 눈앞에 갖다 대며 고즈넉하게 감상하는 영화 '파리넬리' 공연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기절하는 그런 분위기. 딱 그 느낌.
연극 내용은 전혀 몰랐기에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못 하면 어쩌지?''하며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내용도 쉽고 재미있었고 배우들은 어쩜 그리 열정적으로 연기를 잘하던지.. 혹여 졸다간 앞에 앉은 내 모습을 친구가 보고 놀라 대사를 잊어먹지 않을까 염려되어 끝까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공연시간이 130분이라 끝날 때쯤엔 꼬리뼈가 아프고 어깨도 제법 뻐근했던 게 흠이라면 흠. 공연을 마치고 모든 배우가 인사할 때는 멋진 공연을 보여준 모두에게 칭찬할 겸 뭉친 어깨도 풀어줄 겸 해서 열정적으로 물개박수를 보냈다.
끝난 후 아래층 출연자 출입구 앞에서 친구 만나고 감동의 소감과 함께 격려해주고 기념 샷. 멀리 온 친구들을 위해 뒤풀이하자고 하는데 귀갓길이 멀어 노 땡큐를 외치고 단호히 돌아섰다. 나중에 공연일정이 모두 끝나고 얼굴 한 번 보기로..
sc는 돌아오는 길 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주고. 오랜만에 보는 한강 야경이 새삼 멋져 보였다. 한 잔 했으면 좋았겠는데..
오랜만에 고품격 문화생활을 하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오.. 23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는데 어찌나 진눈깨비가 흩날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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